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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과 황희정승 스토리
헬스가이던스 By 이정현
2023. 5. 23. 12:09
오늘 아침에는 세종치세의 인간됨을 상기시키게
되었고 그 분의 가장 큰 업적 중 인재등용을 빼 놓을 수
없다
https://jeje0513.tistory.com/m/779
점심시간의 번잡함을 피해
쉬기편한 장소 스벅에서 가볍게 휴식시간을 갖는다
오늘은 세종대왕과 인연이 많은 날이다
입사때부터 아침 조회때 런센스 퀴즈에 한번을
못 맞췄는데...
작은 상금을 건 런센스퀴즈에 세종대왕의
연초록 지폐가 내 손안에 쥐어진 것이다
문제도 참 쉬웠다
선배님들이 양보해 준 덕분인가?
🐷 돼지가 열 🔥 받으면.....?
// 바베큐가 ...정답이다
가볍게 점심을 먹으며...
세종대왕에 대해 찾아보았다
세종대왕 다스림의 요체는 마음을 닦는 것
백성과 신하를 다스림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마음을 닦는 일이었다.
과연 그는 어떠한 심법으로 국가를 경영했는가..
‘총명(聰明)하다’는 말에서 총은 ‘귀 밝은 총’ 자이다.
즉 똑똑하고 현명하다는 것은 자신의 말과 의견을
내세우기 이전에, 남의 얘기를 잘 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종의 강점을 이렇게 적고 있다.
“군주로서 세종의 생활은 온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판단하고 선택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주기 위해서는 심성훈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노하지 않아야 하고 끈기가 있어야 한다.
또한 지식과 지혜의 우위가 전제되어야 한다.
진정한 강자만이 약자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세종이 황희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렇게 물었다. “두문동에 머물러 있지 뭣 하러 세상에 다시 나왔는가?”
황희는 이렇게 대답한다.
“일찍이 진리탐구에 열중할 뿐 과거에 응할
생각조차 하지 않다가,
백성을 위하여 멸사봉공하는 것 또한 군자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 일러주신 부친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애초에 황희는 태종의 사람이었고 양녕대군을 옹위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세종은 황희의 청렴성에도 불구하고 항상 감시자를 붙여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그러나 또 한편, 이 총명한 임금과 충직한 신하가
서로의 마음을 얼마나 잘 알고 서로를 믿었으면,
세종이 황희를 6조의 판서를 모두 역임케 하고 20여 년을 정승의 자리에 앉힐 수 있었겠는가
황희는 평생 세종의 정치적인 조력자이자 선생으로
묵묵히 세종을 보필한 신하로 남았다. 라고 한다
내가 기억하는 세종과 황희정승의 다른 일화는
제법 흥미롭다
여기서...세종에게 약점 잡힌 황희의 웃픈 스토리를
되짚어 본다
세종에게 발목잡힌 황희정승의 스캔들
⤵️👀자세히 보기
https://story.kakao.com/yebinimom/FLEyW1woKI0
세종 시기에도 건강등을 핑계로
스스로 사직을 여러번 하기도 하였으나
그때마다 세종이 다시 불러들여 결국 87세가
될때까지 재상으로 재직하였다.
그리고 당시로는 드물게 90세까지 장수하였다.
세종과의 회의일 때는 세종이 스스로 독창적인 주장 및 모든 논점을 검토한 뒤에 정책을 결정하였기 때문에
정책의 완성도는 높았으나,
그 사이사이에 무리한 정책 등등이 나와 쟁점의 균형을 잃었을 상황에서, 황희는 쟁점을 정리하며,
가장 현실적인 시행 방안들을 내어 정책을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황희가 많은 문제를 일으켰음에도, 세종이 끝까지
황희를 괜히 붙잡은 것이 아닙니다.
🎥세종의 인재등용 영상⤵️
https://youtu.be/IXCwMoeI14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