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기도다.” 시는 기도(企圖)이며,
또 기도(祈禱)이다.
그 한마디가 이 책의 제목이 되었다.
시는 일방적인 외침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슬픔과
고통의 근원을 들여다보고 껴안는 것이다.
절대적 진리를 믿고 옹호하기보다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고 모색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진리를 떠받치고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외침이 터져 나오는 자리’에서
들려오는 무언의 말이자 기도가 한 편의 시인 것이다.
시는 기도다
임동확 지음|푸른사상 산문선
■ 도서 소개
한 그루 나무처럼 하늘을 우러르며, 시인은 기도한다
세계의 모순과 삶의 역설과의 소통 내지 대화를
바탕으로 한 ‘생성론적 사유’를 시적 화두로 삼아온 임동확 시인의 산문집 『시는 기도다』가
<푸른사상 산문선 48>로 출간되었다.
저자는 이 산문집에서 시와 예술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탐색, 비평 작업을 펼치며 인간과 세계의 본질이 무엇인지 탐구하고 이 시대의 위기와 불안을 극복하고자 한다.
■ 작가 소개
임동확
광주광역시 광산구에서 태어나 대학과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1987년 시집 『매장시편』을 펴낸 이래 시와 산문, 비평 분야에서 활동해왔다. 그간 시집 『살아 있는 날들의 비망록』 『운주사 가는 길』 『벽을 문으로』 『처음 사랑을 느꼈다』 『나는 오래전에도 여기 있었다』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 『길은 한사코 길을 그리워한다』 『누군가 간절히 나를 부를 때』, 시론집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 시 해설집 『우린 모두 시인으로 태어났다』, 산문집 『들키고 싶은 비밀』, 번역시집 『어느 침묵하는 영혼의 책』, 시화집 『내 애인은 왼손잡이』 등을 펴낸 바 있다.
청년기에 지울 수 없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시’를 구원의 동반자로 삼아 간난신고(艱難辛苦)의 한 세상을 견뎌왔다.
특히 그 과정에서 김수영과 김지하 시세계와의
만남을 가장 큰 축복이자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지방지 기자를 거쳐 한신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시를 가르쳐왔으며,
세계의 모순과 삶의 역설과의 소통 내지 대화를
바탕으로 한 ‘생성 미학’의 정립을 최종 목표와
이상으로 삼고 이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 목차
▪작가의 말
제1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이유
시가 터져 나오는 자리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이유 / 근원상실 시대와 자체 발광(發光, 發狂)으로서 시쓰기 / ‘시중인(時中人)’과 세계의 촌부 / ‘내용 없는 아름다움’과 이념 지우기 / 말들의 시간성과 구천동 시론 / ‘이만하면’과 ‘괜찮다’ 사이 / 시인 추방론과 절대 공동체 / 역사적 진리와 개체적 진실 사이 / 비극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제2부 태초에 우연이 있었다
『매장시편』이 나올 무렵 / 풀은 더러 바람에 움직이지 않는 놈조차 있다 / 우연의 순간과 사랑의 변주곡 / 수정처럼 맑은 오월, 부줏머리 갯가에 숭어가 뛸 때 / 다함 없는 비밀과 불가해한 미지의 세계로 / 유리잔이 깨지는 순간과 ‘시적인 것’ / 고요는 배고픈 멧돼지처럼 / 죽음과 폐허의 가로지르기 / 수동태의 시학 / 늙은 원시인의 부싯돌 소리가 / 복면을 하자, 문득 기적처럼 깨어나도록
제3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신화의 힘과 시인의 길 / 소년 뱃사공과 생명신화의 창조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미완의 완성지 운주사의 새벽 / 땅끝, 또 다른 시작의 여정 / 즐겨라, 오 찬란한 슬픔의 봄을 / ‘억압된 것들의 귀환’과 귀향 의지 / 광기의 시대와 절도의 정념 / 현실주의적 수묵화의 길 / 생성의 세계와 우연의 향연
제4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이 세상을 움직여간다 / 시는 여론이 아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 무등의 아침 햇살을 보며 / 자발적 가난과 예술가의 길 / ‘도토리 키 재기’와 왕따 사회 / 태극기 단상(斷想) / 나는 불토릭이다 / 5월이 온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스무 해 만에 펴내는 나의 두 번째 산문집
『시는 기도다』는 분명 시와 산문 사이에서
어중간한 포즈를 취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사유를 전개하고 담론을 이끌어가는 주요 논거와 사변이 자주 시와 시인들의 말로 의지함으로써 저도 모르게 현실을 객관적으로 탐구하면서
매서운 비판을 가하는 산문 정신 대신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에 더 주목하는 일종의 시론(詩論)에 가까워진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다.
하지만 내게 시는 분명 어떤 ‘겉사실’의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속사실’의 대상이다.
특히 올바른 시가 단순히 현상의 사건이 아니라 가장 깊은 심연의 언어를 그 근본으로 하고 있다면,
표면적인 형태와 그 접근 방법이 다를 뿐 시 정신이야말로 산문 정신이 지향하는 사유 체계와 비판 정신의 정수다.
젊은 시절, 나에게 하나의 길잡이이자
일종의 경전이었던 김수영의 『퓨리턴의 초상』과 『시여, 침을 뱉어라』 등에 실려 있던 산문들과
시의 관계가 그 좋은 예다.
내심 나의 문학적 스승으로 삼아왔던 김수영의 말처럼 주로 개인적 자유에 관계하는 시 정신과 정치적 자유를 이행하는 산문 정신을 그야말로 ‘온몸’으로 밀고 나갈 때, 어느새 시와 산문은 서로의 차이와 대립을 끌어안으며 역동적인 통일을 이룬다.
얼핏 대립적으로 보이는 주관과 객관, 사유와 존재, 형식과 내용 사이의 끊임없는 운동과 ‘모험’이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문득 그 차이를 넘어서게 하는 ‘기적’을 낳는다.
제2산문집 제목 『시는 기도다』는 무슨 종교적인 사색이나 시의 종교성을 의식하고 정한 것이 아니다.
단적으로 이는 문학평론가 김현이 마지막 남긴 평론 「보이지 않은 심연과 안 보이는 역사 전망」의 한 구절 “시는 외침이 아니라 외침이 터져 나오는 자리”와 깊게 관련되어 있다.
오랫동안 나는 그가 왜 시를 그렇게 정의하고자 했는지에 대한 쉬 풀리지 않는 의문을 가져왔다.
그러다가 최하림 시인의 10주기를 계기로 쓴 추도문 ‘시는 기도(企圖/祈禱)다’가 나로선 그에 대한 일종의 응답이었으며, 종내 이를 이번 산문집의 제목으로 삼았음을 여기 밝혀둔다.
■ 출판사 리뷰
젊은 시절, 뜻하지 않은 역사적 격변에 휘말렸다가
문학의 길을 걷게 된 시인이 있다.
그는 세계의 모순과 불화에 주목하고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궁극적인 화해와 소통에 깊은 관심을 가진다.
‘생성 미학’을 시적 화두로 삼고, ‘모든 차이와 분열을 극복하며 연대하고 통합하는 대긍정의 세계와 맞닿아 있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생성의 세계라고 말한다.
그러한 시인 임동확이 두 번째 산문집을 펴냈다.
이 책에서 동시대의 시와 예술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탐색, 치열한 비평과 평가 작업을 펼치며 그동안 제기하고 모색해온 생성론적 사유와 시론을 확장하고 심화하고자 했다.
시란 무엇인지, 시가 이 시대에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수많은 시인과 문인이 오랫동안 천착해온 문제이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마지막 남긴 평론에서 “시는 외침이 아니라 외침이 터져 나오는 자리”라고 했는데,
이러한 정의에 의문을 가진 저자는 훗날 최하림 시인에게서 그 답을 찾는다. “시는 기도다.” 시는 기도(企圖)이며, 또 기도(祈禱)이다.
그 한마디가 이 책의 제목이 되었다.
시는 일방적인 외침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슬픔과 고통의 근원을 들여다보고 껴안는 것이다.
절대적 진리를 믿고 옹호하기보다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고 모색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진리를 떠받치고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외침이 터져 나오는 자리’에서 들려오는 무언의 말이자 기도가 한 편의 시인 것이다.
이 책은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에는 윤동주, 김수영, 김종삼 시인 등의 시와 산문을 살펴보며 당대 혼란한 현실과 문제점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그에 대한 대안을 모색해본다.
이 시대를 관통하는 우리가 지키고 가꿔 나가야 할 소중한 가치와 덕목들을 성찰한 것이다.
2부에는 시인으로서 임동확 자신의 시와 시론을 중심으로 자작시에 대한 시적 기반과 거기에 바탕한 해설을 들려주고 있다.
3부에서는 마르케스 소설 세계와 장흥의 소년 뱃사공을 신화적 사건으로 보면서 새로운 문학과 동학이 가능성에 대해 탐색하였으며, 광주, 안좌도, 운주사, 해남 등의 여행기가 펼쳐진다.
화가 수화 김환기를 비롯해 강연균, 김호석 등의 그림을 감상한다. 4부는 격동하는 현실과 전망이 부재한 시대적 혼돈 속에서 인식하는 사유와 더불어 비판과 성찰을 담았다.
필자는 궁극적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시적 세계의 탐구를 통해 인간과 세계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닫고자 한다.
특히 시가 이 시대 현실을 깊이 포착하고 총체적으로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관점에서, 이 산문집을 통해 현재의 위기와 불안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과 삶의 방식을 찾아내는 데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 산문집 속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나무들’은 이런 시인들의 표상이다. 모든 ‘나무들’이 오직 제 양심의 흐름과 불가역적인 그 명령에 복종하는 고독한 시인처럼 각기 서 있는 그곳이 바로 생명 유지의 작업장이자 침실이며 기도실이다.
스스로를 지탱하는 뿌리를 땅속 깊은 곳의 세계 중심에 둔 채 하늘과 영원을 향해 가지를 뻗어가는 ‘나무들’은, 자유로운 구속 속에서 최고의 필연성을 추구하는 시인들을 닮아 있다.
특히 그것들은 근원적으로 무릎을 땅에 꿇고 두 팔을 위로 치켜든 채 기도하는 기도자와 닮아 있다.
평생 세상과 스스로 담을 쌓은 채 살아가는
봉쇄수도원 수사들처럼 고결한 정신의 시인들을
연상시키는 게 한 그루 나무다.
(「시가 터져 나오는 자리」, 19쪽)
시인들은 ‘보다 인간다운 것이 무엇인가’란
끊임없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자칫 어떠한 연대성이나 사회성을 갖추지 못한 광인(狂人)으로 오해받기도 하는 시인들은 그 속에서도 인간의 본질과 존재 의의의 영역을 끊임없이 확장하고자 한다.
기꺼이 믿고 의지할 말한 근원 상실의 시대 속에서도 어떤 평가나 이해에도,
신념 체계나 이념에도 좌우되지 않은 인간의 경험의 깊이와 자기 존재의 수준을 높여주는 자기 초월력을 위해 더 과감하고 무모하게 존재의 심연까지 모험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근원상실 시대와 자체 발광(發光, 發狂)으로서 시쓰기」, 31~32쪽)
세계를 고정되고 안정된 법칙이나 도식의 차원에서 접근하기보다 늘 새롭게 생성되는 역동적인 변화와 운동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입장에 서 있는 ‘생성의 사유’는 적어도 나에게 미학적이거나 인식론적인 차원에 그치지 않습니다.
나의 삶의 태도와 더불어 윤리적인 것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특히 그것은 단지 시인으로서 나에게 ‘순간의 시학’의 구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이고 우주적인 연민과 배려, 공감과 감응의 문제와 연결됩니다.
동시에 모든 차이와 분열을 극복하며 연대하고 통합하는 대긍정의 세계와 맞닿아 있는 게 진정한 의미의 생성의 세계지요.
앞으로는 저는 미력한 힘이나마 주체와 대상,
앎과 삶 사이의 형식적 유대가 아니라 그 둘 사이의
행복한 .결합에서 오는 생의 희열 또는 자발성에 .주목하는 생성과 내재의 시학을 펼쳐가는 시인이 되고자 합니다.
(「복면을 하자, 문득 기적처럼 깨어나도록」, 14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