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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의 현실을 여과없이 보여준 천경자화백의 ...'미인도' 사건

헬스가이던스 By 이정현 2023. 4. 8. 20:01



https://youtu.be/9MooC5Mu110



이공품 김영재님글  모심)

우리나라 미술계의(에) 현실을 보여주었던,
꽃과 여인의 화가
천경자화백 안타까운 미인도 사건에 관한내용입니다

미술에 관심없는 분들도 많으시겠지만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에
언급해봅니다

천경자(1924.11.11 ~2015.8.6)화백은

한국 미술계에 걸쭉한 화가를 꼽으라면 거론될 수
있는 인물중 '꽃과 여인의 화가'로 알려진 분으로,

한때 '미인도' 진품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던 화가로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화가였습니다.

이슈의 중심에 있는
1977년작품 '미인도는 //(낭독생략)본래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소장하던 작품이었는데


1979. 10.26 박정희 살해사건으로 그의 재산이
정부의 소유로 넘어갔고, 그가 소장했던 '미인도'는
1980년 5월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들어가게 됐다.

그러다가, 1991년 3월 '움직이는 미술관' 순회전의 전시작으로 '미인도'가 등장했고,

대중들에게 관심을 많이 받았던 '미인도'는 그림의
대중화를 위해 당시 만원에 판매되는 '프린트(작품복사본)'로 나간 것을 본인의 작품이라는

'미인도'를 천경자 화가가 보게 되었고,

자신이 그린 작품이 아님을 알고,
화랑협회와  국립현대미숙관을 상대로 위작임을
주장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내가 낳은 자식을 내가 몰라보는 일은 없다'고까지 한 것처럼 강력하게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위작시비가 벌어졌다.

당시, 작가가 자신의 그림이 아니며 그리지 않았다는 말에도 미술계는 진품이라 주장했고,

당시 68세였던 천경자 화가를 자기 그림도 못 알아보는 치매 노인으로 폄하해버렸습니다 ㅠㅠ

이런 처사는 작가가 생존해 있고
정신상태가 정상이라면
작가 의견에 감정의 우선 순위를 둔다는
화랑협회 내부 규정에도 어긋났지만~

미술계는 결국 법적 공방으로까지 끌고가면서
억지를 부렸고,

검찰은 진품으로 판결했던 것입니다

이 사건이 발생한 후에,
천경자 화가는 절필을 선언했고,
그녀의 둘째 딸 김정희와 함께 미국으로 떠나버렸습니다.

그러나, 대중에게 알려진 것과는 달리 최경자화백은
미국에 건너가 4개월정도 머물다가  다시 한국에
들어와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본 논지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
미술계가 '미인도'를  진품이라 주장했던 흐름에는

<화랑협회>와 <국립현대미술관>이
그 선두에 있었고,
국내 미술계를 지탱하는 두 기둥이었습니다

화랑협회는 미술품의 유통과 보급을,
현대미술관은 한국 미술의 권위와 정통성을
가졌었는데, (물론 지금도 그들의 권력은 절대적이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미인도 위작 논쟁은
바로 이 두 기관의   존재 이유에 대한 ‘생사’를
가를지도 모르는 문제였기 때문에
그들은 이를 진품이라 우겨야만 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논란 당시 천경자 화백의 지적을 묵살하고
감정위원들의 ‘감’으로 진품여부를 판단했고,

30년 가까운 시간동안 그들의 주장을 유지했왔으나
결국 그들의 감정결과가 틀렸으며!

그들의 감정 근거 대부분 사실과 다르고
과학분석에서도 위작 증거들이 드러났습니다.

또한, 사건이 벌어진 지 8년 후인 1999년!
고서화 위조범 권춘식이
'미인도'를 자신이 그렸다고 자백하며
고인(최경자)에게 용서를 빌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한국화 위조범과 현대 미술관 중 어느 쪽을 믿느냐?"며
반문하면서 그들이 틀리지 않았음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리 당당하게 주장하던
국립현대미술관의 주장과는 달리
2010년, 공식사이트 개편 전에 검색되던
'미인도'가  이후 현대미술관 공식사이트에서
소장품 목록에서 검색되지 않는 상태입니다

이상 ...고인이 되셨지만
표현에서의 화려한 색채의 감각적이고
자유로운 시대를 앞서갔던 천경자 화백님에
관한  이해와 공감의 품격 김영재님의 게시글  낭독해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미술계를 여과없이 부여준 '미인도'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