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그 작성에 앞서...
한그알 입장이 배제된 저의 사견으로 작성됨)
정독도서관을 시작으로 북촌에서 서촌까지
매국노 흔적 찾기 🇰🇷한그알 역사속으로 반짝걷기
4시간 넘게 역사속으로 걷는 체험하며
역사룡쌤의 세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시간
(참고자료/매국노 차클투어 영상 중 일부 스크린캡처
https://jeje0513.tistory.com/m/805
경술국치
1910년 8월 29일 일제에 의해 우리나라의
국권을 상실한 날로,
'국가적 치욕'이라는 의미에서 경술국치라 한다.
이날은 일제가 대한제국에게 '통치권을 일본에
양여함'을 규정한 한일병합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날이다.
하지만 대의를 위해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역사 속 🇰🇷민족저항의 열사 앞에서
어떤 자손은 선대와 다른 행보로
목숨을 걸고 열악한 독립투쟁의 독립군 활동을
했으며
어떤 자손은 일제에 대항해 거국항쟁의 열사를
원망하는 개인적인 삶으로서의 토로를 했다는게
내게 많은 화두를 던져줬다
하지만 현장에서 토론하듯 거론된
구국열사의 후손은 명예뿐만 아니라
대대손손 국가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보답이
있어야하고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그분의 자손에게 빚진마음이다)
억울해 하는 매국노의 자손들까지 불명예와
대대손손 치욕을 떠 안고 살아가야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식인들이 더 매국의 선봉에 서서 행하며
동조했던 카멜레온 같은 인생은
🎬영화 속의 변절자 처럼 청산 없는 역사가 계속
이어진다는 현실에서 이념의 갈등 안고 살아가고
있다
역사를 잃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그리고...
반성없는 매국의 반열에 있는 그들 또한
호의호식하며 살았던지 아니었다고 해도 변별없이
용서는 1도 없다는 생각이다
청산없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
우리가 각성해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나이와 상관없는 꼰대적 사고를 하는
이기적인 삶을 살지않기 위해
역사앞에서 늘 자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 아이의 앞에서도 어른다운 모습으로
당당해지려면 필요 충분 조건인 것 같다
변절자의 삶이 후대까지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선명하게 응징된다면!
분별없는 지성인의 되풀이 되는 행태를
사전에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제일 존경하는 분은 김구선생이다
하지만 그 시대를 살며 독립운동으로 태극기를
들었을지 창씨 개명하며 앞으로 벌어질
풍전등화 앞에서 동조했을지 나 또한 어찌
확신할 수 있을까
어느 누구든 역사앞에서 결과에 대해
심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두번째 한그알 3인의 북촌에서 서촌까지 잘 알려진
매국노와 드러나지 않아 잘 몰랐던 매국노까지
귀를 쫑긋이 세우고 생생하게 설명을 들어가며
역사의 현장을 돌아 보았다
땡볕에 서 있는 시간들 빼고 걸었던 걸음수가
15천보는 넘었을 것 같다
혼자서 자신없지만 역사의식의 연대감으로
더불어 함께 할때 더 의미있게 새기고 명분있는
인생의 중요한 방향타를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한국史 그것이 알고싶다 / 매국노 흔적 투어
두번째 행보할 수 있어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포털에서 정독도서관이 을사오적/ 박제순의
가옥이었던 내용이 바로 뜨지않고
유원지처럼 다뤄진게 실망스러웠다
다행히 역사의 현장을 찾아볼 수 있는 내용을
찾을 수 있었다 ( 중등교육의 발상지라는 주제이지만)
정독도서관, 서울 중등교육의 발상지에 서다
정독도서관은 을사오적(乙巳五賊)
박제순(朴齊純)의 가옥이었다
박제순 (朴齊純)
대한제국의 참정대신. 조선과 대한제국의 정치가,
유학자, 외교관, 친일반민족행위자
출처 : 忍者無敵브로그
- https://naver.me/5i0Ccq8U
‘장원서터’ ‘화기도감터’ 표석과
‘중등교육 발상지’ 표석이 나란히 서 있다.
출처 : The nextstory⤵️👀
https://naver.me/F4tNLfr2
성삼문선생(1418년~1456년) 집터 표석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들 때 정인지, 신숙주 등과
함께 이를 도왔고,
신숙주와 함께 명나라와 왕래하며 정확한 음운을
배우고 제도를 연구하는 등 훈민정음 반포에
큰 공헌을 했다.
단종 복위를 꾀한 그는 수양대군에 의해
거열형을 당했다.
청와대쪽으로 교통통제로 경복궁을 지나쳐 가야되었다
연이틀 비온 뒤 습하고 더운 날씨 일행은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 한잔과 담소를 나눴다
나라를 팔아먹고 호의호식하던 시작부터
열받아 차가운 음료는 기본,
남은 얼음도 물에 넣어 챙겨다니길 잘했다
우리가 잘 몰랐다 윤xx의 서촌 벽수산장의 일대를
다니며 더운날 더 열받아 그 열을 식혀야 했다
ㅡ
ㅡ
매국노 탐방하며 후손의 선택이 아니었잖느냐라는 질문이
나왔다 순간 답답한 생각도 들었다
https://naver.me/xWi2gBdn
🇩🇪독일나찌 전범의 재판 중 명령하달시행으로 한일이라 자신은 죄가 없다라는 무책임했던 그에게 유죄를 선언한 판결이 떠올라지기도 했다/
나라에 속한 안중근 후손의 처한 상황에서
개인적인 고뇌와 역사에서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두고두고 고민해 보게 된다
https://m.blog.naver.com/modernh4/223110936563
이완용
을사오적의 한 사람이며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은
최악의 매국노로 불린다.
고종을 협박하여 을사늑약 체결과 서명을 주도했고 의정부를 내각으로 고친 후 내각총리대신이 되었다.
헤이그특사사건 후 고종에게 책임을 추궁하여 물러날 것을 강요했고, 순종을 즉위시켰다.
총리대신으로 일본과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했다.
https://jeje0513.tistory.com/m/815
경술국치와 우리민족에게 치욕을 안겨주고
벽수산장을 지어 궁을 내려다보려 했던
우리가 잘 모르는 매국노
윤덕영
시대 근대/일제강점기
출생 - 사망
1873년(고종 10) 12월 27일 ~ 1940년 10월 18일
성격 //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출신지 // 서울
성별 // 남
본관 // 해평(海平)
관련사건 // 광무개혁, 한일병합
대표관직(경력)// 비서원경, 의정부 찬정, 시종원경,
자작, 일본제국의회 귀족원 칙선의원, 중추원 부의장
정의
일제강점기 일본제국의회 귀족원
칙선의원, 중추원부의장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윤동주시인의 학숙집터에서...
https://youtu.be/RLZ5vy977QQ
역사룡쌤의 마무리 단계에서
다시 새겨들은 지식인들의 구국 3.1운동의
조직적이지 못했던 부분을 거울처럼 반사해서
생각해 보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박노수미술관 /
(1938년 윤덕영이 딸을 위해 지은 집)
현재는 박노수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https://naver.me/GYu8ukkk
참고로 )
박노수 화백은 전통적인 화제를 취하면서도
간결한 운필과 강렬한 색감,
대담한 터치 등의 독자적인 新 화풍을 구축하여
전통 속에서 현대적 미감을 구현해 낸 작가로
높은 평가를 받고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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